영숙이네집 :: 궁금한 이야기Y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딸 이향진 배에 총 실어 고하도 간 이유 518 광주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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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이야기Y에서는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의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이준규 서장은 신군부 명령을 거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5.18을 맞아 이준규 전 경찰서장의 이야기를 전해 봅니다.

평범한 가정의 딸로 자란 이향진(61)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이향진 씨는 38년 전 공부를 하기 위해서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아버지가 긴급 체포되어 서울로 올라오셨다는 것입니다. 이향진 씨는 아버지의 속옷을

가지고 아버지가 있는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구금되고

90일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돌아온 아버지는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씀 외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고 합니다. 딸 이향진 씨는 경찰 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캐이스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들이 났기 때문에 가족들이 상처가 컸죠라고 말합니다.

 

 

이준규 전 경찰서장은 1980518일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목포경찰서장이었습니다.

90일 동안 억류에서 풀려나자마자 시위를 통제하지 못했고 자위권 행사를 소홀히 한

경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파면 당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구금 당시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향진 씨와 가족들은 광주민주화 항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해자 가족이라는 오해을 받을까 세상에 변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일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남경찰청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조사팀으로부터 뜻밖의 발표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군부가 계엄군의 폭력진압을 호도하기 위해 이준규 서장 등 일부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아 파면했다는 것입니다.

1980년 광주 경찰의 총책임자였던 전남도경 안병하 경찰국장과 유자조들 역시 목포경찰서

이준규 전 서장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안병하 국장의 아내 전임순 씨는

남편이 보안사에 나오자마자 그 목포 서장 걱정을 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신군부에 대한 시위가 거세지자 신군부의 계엄군은 경찰에게 총기를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안병하 국장은 볼복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목포경찰을 포함한 전남지역경찰에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당시 이준규 서장도 시민들에게 사상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 배에

총기를 실은 채 목포를 떠나 가장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습니다. 방송에서는

목포와 고하도에서 당시 이준규 서장의 행적에 대해서 증언을 들어 보았습니다.

 

 

당시 목포경찰서 관할파출소 근무자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분이 참 조치를

잘했다 만약에 그것을 경찰관들에게 지급하고 서로 맞대응을 했다면 목포 시민들

엄청나게 죽었지라고 떠올렸습니다.

이준규 전 서장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오직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힘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방송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하다 고초를 당한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의 사연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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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