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인간극장 드니 성호 얀센스 아내 이민희 벨기에 입양아 클래식 기타리스트 벨기에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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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 드니 성호 얀센스]

유럽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면서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44), 그의 이름에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1975년 겨울, 부산 시청에서 발견된 아이는 태아난 지 사흘만에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네 군데 보육원을 돌다 벨기에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12년 전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그의 고향인 부산을 처음으로 밟아 보았습니다.

나의 고향은 어떤 곳일지, 친부모님은 어떻게 생겼을지, 왜 자신을 버리고 갔는지

그렇게 3달간 머물며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부산 시청을 찾아가

보고 가족을 찾아주는 방송에도 출연해 자신의 얼굴을 알렸습니다.

친모,친부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 스무 번 가까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였습니다. 계속되는 좌절에 힘이 돼준 것은 바로 그의 아내 이민희(32)

씨입니다.

벨기에 부모님과 친척들은 항상 드니를 아껴줬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드니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의 한

보육원을 찾아갔습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으로

기타를 가르쳤고 그곳에서 아내 이민희 씨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한

달간의 연애를 거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드니는 나이 차이와 입양아, 음악가라는 것 때문에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밥을 넘기지 못햇다는

장인어른, 하지만 내 딸이 사랑하는 남자라기에 쓴소리 한번 없이 결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족 식사 날이면 요리사를 자청해 특제 게장 스테이크를 선보이고 애교 넘치는

사위로 변신해 엉덩이춤을 춥니다. 그 모습에 장모님도, 무뚝뚝한 장인어른도 지금은

드니의 일등 팬이 되었습니다.

홀로 한국에 와 방황하던 그가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신을 편견 없이 품어준

한국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드니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입니다.

한국에서 결혼을 했지만 마음 한곳에는 벨기에 부모님이 걱정입니다. 부부가 된 드니는

함께 벨기에 행 비행기를 올랐습니다.

벨기에 부모님은 부부를 반갑게 맞이하고 아들과 멀리서 온 며느리에게 바비큐 파티를

차려줍니다. 아이를 갖지 못했던 벨기에 부모님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드니를 입양

했습니다.

체육 교사였던 아버지는 무뚝뚝했지만 드니와 통하는 것이 많았고 꽃집을 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꽃 알레르기가 있자 장사를 접기까지 했습니다. 부모는 오직 사랑으로 드니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드니에게는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바로 동양인, 입양아라는 꼬리표

였습니다. 부모님은 드니가 마음 아파할 때마다 사랑으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힘을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이 한국에 친부모를 찾고 싶어 떠날 때에도 아들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실패도 하고 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매 순간 자신을

지켜준 부모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드니는 입양아로 느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부단히 기타 연습을

했습니다.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지금의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된 것입니다.

그는 단 하루도 음악을 잊은 적이 없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클레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클래식과 전자음악의

조합입니다. 1년 동안 직접 편곡을 하며 준비한 공연, 과연 드니는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요.

드니와 아내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기타를 꺼내든 드니.

드니는 노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 찾은 한국.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이지만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는 드니.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인생을 위해 드니 성호는 희망을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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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