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송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야합과 배신으로 얼룩진 관산성 전투에 대해서
방송을 한다.
고구려가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남쪽으로 내려 오고 있는 상황.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남진을 막지 위해서 동맹을 맺는다.
그런데 신라에서는 숙적인 고구려와 계속 접촉을 하고 있는것을 알게 된 백제.
동맥국인 백제를 향한 신라의 도발은 무엇이었을까?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554년 신라와 백제는 국운을 건 한반 승부를 하게 된다. 그 승부가 관산성에서 펼쳐진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서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게 된다.
이렇게 나제동맹이 이루어진다. 이 후로 120년이 넘게 아주 좋은 사이로 지내던 백제와 신라.
하지만 553년 이들의 오래된 동맹이 와해되는 일이버러진다. 신라군이 백제의 땅인 한강유역을
넘어와 신라의 땅으로 편입을 시킨 것이다.
백제의 성왕은 한강유역 탈환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사건이였다. 신라는 오래전부터
한강유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4년전부터 신라의 도발은 시작이 되었고 이렇게
오랜시간 맺어온 동맹을 깬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의 배신 뒤에는 고구려가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는 백제가 모르게 신라와 은밀하게
접촉을 했다. 고구려는 신라가 탐을 내던 한강유역을 조건으로 신라에게 고구려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이다.
백제 성왕은 신라와 고구려의 야합으로 신라에게 두번이나 배신을 당했다.
이런 성왕은 신라에게 응징을 하는데신 자신의 딸과 진흥왕과의 결혼을 제한했다.
왜? 자신의 딸까지 신라의 왕에게 주면서까지 우호적으로 대했을까?
과연 성왕의 속내는 무엇이였을까?
그디어 554년 신라의 관산성을 향해서 전투가 시작이 되었다.백제는 왜? 대가야와 함께
신라를 압박해 나가 초반부터 백제의 공격에 계속 무너지고 마는 신라.
백제의 관산성 탈환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관산성 싸움에 승자는
백제가 아니라 신라다.초반 기세를 올렸으나 백제가 신라에게 관산성 싸움에서 지고 만것은
바로 백제의 성왕이 죽음 때문이였다고 한다.
성왕의 죽음으로 백제는 한순감에 쇠락의 길로 들어가고 반대로 신라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만들게 된 관산성 전투. 오늘 자세한 내용을 "그날"에서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