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무하마드 박]
경북 영양의 깊은 산속마을에는 그림 같은 운무가 걷히고 나면 염소들의 산책이 시작
됩니다. 산골에서 염소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20년 전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남자
박현민(49) 씨와 마산 여자 신화선(52) 씨 부부입니다. 부부는 지난겨울 이곳으로 들어와
염소 농장을 시작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밭농사에 도전을 했습니다.
부부는 하루 24시간 함께 붙어 있으면 질릴 법도 한데 얼굴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상추쌈 하나를 싸도 서로의 입에 먼저 먹여주는 닭살 부부입니다. 현재 결혼 5년 차인 부부.
부부는 서로의 두 번째 사랑입니다.
화선 씨는 사별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남편 박현민 씨는 만났습니다. 남편의 원래 이름은 무하마드 아미르셰이크로 한국에 온지
이제 15년째로 한국말 실력도 수준급인 자상한 남자입니다.
이혼 후 혼자 살아가던 남편도 밝고 유쾌한 화선 씨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지난해 현민 씨는 직장에서 허리를 다쳐 해고 통보를 받았고 부부는 피난처를
찾아 이곳 산골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준비도 없이 급하게 시작한 산골 생활, 염소를 키우며 먹고 살려면 2~3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귀농귀촌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추,
고구마, 땅콩, 종류대로 농사를 지었지만 초보 농부의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산골 생활은 계속 적응해 나가고 있지만 화선 씨는 마음 한편이 무겁습니다. 몇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산에서 취업 준비로
바쁜 고등학생 딸도 걱정입니다. 화선 씨의 마음을 모릴 리 없는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장모님 댁으로 향합니다. 화선 씨의 딸이지만 내 자식 같은 마음으로 생일 선물과 편지도
적어 보냅니다.
이제 월동 준비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지난해 겨울에는 전기세 폭탄을 맞고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뎠습니다. 올해는 난로도 들여 놓고 땔감도 마련했습니다. 산골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 지난해와 다름없이 추운 날씨지만 부부는 두렵지 않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따뜻한 위로가 되는 내 짝이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