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스페셜 부산 광복동 꽃할배 여용기 맞춤양복 모모 양복점 마스테 데일러 양찬선 코코양복점 대한민국 명장 재단사 이탈리아 피티 우오모
2015. 11. 23. 08:51 from 카테고리 없음오늘 MBC 다큐 스페셜에서는 부산 광복동 꽃할배를 소개한다.
최근 약 2만명의 SNS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부산 광복동 맞춤양복 재단사 여용기 씨.
예전에는 광복동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재단사였지만 기성복으로 인해서
맞춤양복 만드는 일을 그대로 그만 두어야 했다.
그러나 25년만에 다시 재단사로 돌아와 SNS를 통해서 멋진 스타일을 뿜내며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960~70년대 부산 광복동은 서울 명동보다 더 멋쟁이
골목으로 불렸다. 그당시 "유행은 광복동으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던
광복동 맞춤양복거리.
맞춤양복은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들어 왔다. 여용기 씨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17살이라는
어린나이에 고향인 거제도에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이곳 광복동으로 왔다.
양복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재단사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29살에 처음으로 오너재단사가 되어 "모모 양복점"을 개업을 하며
성공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기성복이 발달을 하면서 양복점 사업을
기울고 주변에 있는 맞춤양복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광복동 꽃할배는 지금 옷을 만들어 내는 대형 공장이 아닌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들이
100% 수작업으로 비스포크 공정으로 만드는 섬세한 작업으로 정장을 만들어 낸다.
현재 부산 "최고의 마스터 테일러"라고 알려지고 있는 양창선 씨. 그는 여용기 재단사의
"모모 양복점"바로 옆에서 "코코 양복점"을 운영 했었다.함께 재단일을 하면서
여용기 재단사의 복귀를도왔다.
양창선 씨는 여용기 씨가 광복동을 떠난 뒤에도 끝까지 광복동을 지켰다.
훌륭한 기술을 인정 받으면서 수제 양복이나 양장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를 하면서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인 "국정사"를 인수하고
지금은 해운대로 옮겨서 부산만의 맟춤양복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맞춤양복의 세계로 돌아와 후배들에게 맞춤양복 기술과 가치를 전수하고 있는
마스터 테일러 여용기 씨. 이제 그는 어렸었던 시절 많은 도움을 받은 형님에게
선물을 할 옷을 완성한다. 1만2천 땀의 손바느질을 통해서 완성된 단 한사람을
위한 옷인 맞춤양복의 특별한 가치를 생각해 본다.
또한 SNS를 통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여용기 재단사가 생애 처음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우오모"에 참가 하는 여정을
함께 한다. 방송에서는 여용기 재단사를 통해서 맞춤양복의 가치와 멋있게 나이가
든 다는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