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인간극장 파로호의 여인 정병덕 윤정해 부부 파로호 어부 연락처 6남매 민물고기 붕어 잉어 60년 경력 노부부 평화의 댐 강원도 양구 화천 민물장어


반응형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파로호는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 사이에 있는 강입니다. 1944년에는 화천호라고 불렸지만

6.25 전쟁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곳이라는 의미로 파로호가 되었습니다. 파로호에서 어릴

때부터 잘라온 정병덕(81), 윤정해(77) 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정병덕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 짐칸에는 아내 윤정해 할머니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 아주 특별한 의자가 있습니다.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이미 아침을 머고 호수에 나갈 준비를 하는 부부는 새벽 3시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합니다.

평생 몸에 밴 습관이 60년이 지나도 그대도입니다. 산골 없는 형편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6남매를 키우기 위해 할아버지는 파로호에서 어부로 할머니는

 만평 농사일을 하며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부 일을 잠시 그만 두었던 시기는 평화의 댐이 생기던 약 8년간이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때, 할아버지는 심마니로, 약초꾼으로 가정의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에

환갑 때까지만 어부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부부지만 평생을 수지 않고 일한 탓에 쉬는 것이

더 힘들다며 이제는 죽을 때까지 어부로 살겠다고 말합니다.

 

 

부부의 소망은 사는 데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배는 쉬지 않고 그물을 놓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 좋기로 소문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탐내던 신랑감이었던

할아버지를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사람은 윤정해 할머니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성화에

부부는 열다섯, 열하홉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달콤한 신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첫 딸을 낳고 그 무렵 할아버지가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군대로 가고 시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신골 집에는 해수병에 걸린 시어머니와

어린 딸, 정해 씨 이렇게 여자 셋만 남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소사에 농사일까지 해야 했던 어린 며느리가 안쓰러웠던 시어머니는 고부간이었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자며 친 모녀같이 정을 나누었고 정해 씨 또한 시어머니에게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이었던 큰딸이 친구와 함께 목욕하러 파로호에 간 그날 그곳에서 딸을 잃었습니다.

슬픔에도 6남매의 부모였던 부부는 파로호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평생 했던 그물질이 이제는 딸을 기억하는 방법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부부입니다.

부부는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6남매를 위한 헌신의 세월이었습니다. 도시에 나간

둘째 아들은 수면제 중독에 걸려 생사를 오갔었고 시집간 둘째 딸은 IMF를 맞아 직업을

잃고 생계가 막막했었습니다. 다행히 부부의 지극정성으로 둘째 아들은 회복되었고 둘째

딸도 병덕 씨가 농사지은 옥수수를 가져다가 뻥튀기 장사를 시작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습니다.

병덕 씨는 60년 파로호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답게 올가을 태풍에도 그물질을 하며

만선의 목표를 이뤘습니다. 병덕 씨는 아내의 일이라면 어디든 따라나서고 있습니다.

아내가 홀로 외출을 할 때면 5분 거리도 안 되는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고 배웅 하는 일도

예삿일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6남매를 함께 키우고 반세기를 함께 견뎌내며 삶의 모둔 순간을

켜켜이 쌓아 온 부부, 이른 새벽안개도 걷히지 않은 파로호에서 서로가 없다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정병덕 할아버지(010-8545-4482),

윤정해 할머니(010-8918-1332), 033-482-1332

반응형
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