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영숙이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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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뚜리 동죽칼국수

<오징어보쌈>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304-9

041-260-2061

 

로지

<알을품은 닭>

서울 강남구 신사동 653-12

02-542-9936

 

장독집

<육쌈>

여름철 더욱 수육을 대신해서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육삼이다.

얇게 썰은 고기위에 새콤 매콤한 야채를 함께 싸서 먹으면 담백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인천 연수구 동춘동 맹고개로 83길45

032-83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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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17세 아들이 엄마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고발하는

사건에 대해서 방송을 한다.

과연 엄마가 아들을 어떻게 폭행을 했기에 아들이 엄마를 고발했을까?

엄마가 아들을 폭행을 시작한 것은 아들이 7살 때부터라고 한다.

7살부터 지금 고1인(17세) 지금까지 엄마의 폭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들이 마트에서 맥주를 훔친 사건으로 알려지기

시작을 했다. 마트 주인이 도둑을 잡기 위해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잡은

범인은 고1 남학생이였다. 남학생의 엄마까지 마트로 찾아와 사과를 하고 돈을

물어주고 사건은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을 엄마가 다시 고소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아들 머리숱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냥 장난으로 "너 왜 이렇게

머리숱이 없냐"는 대답에 아들은 엄마가 다 뽑았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그동안 있었던 학대를 경찰에서 말하기를 시작을 했다.

학대 과정에서 아들에 팔이 부러지는 경우도 발생을 했을 정도로 폭행은 단순히

엄마가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는 차원을 넘어 선 것이었다.

아들은 경찰에게 집으로 가느니 차라리 감옥에서 살겠다며 경찰에세 애원을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아들이 폭행 당한 사실이 바로 친척들에게 알려지기 시작을 했다.

아들에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꼬집고 깨물고 쇠주걱, 박달나무로 만든

곡괭이자루로 엄마의 하히힐로 아들을 때렸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폭행은 단 둘이 있을 때도 발생을 했지만 선생님이나 아들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들을 폭행하면서 웃음까지

보였다는 엄마.

이런 폭행을 견디다 못한 아들은 자살을 하기 위해서 세제도 먹어 보고 넥타이로

목을 매기도 했다고 할 정도다.

과연 아들에 말이 모두 사실일까?

제작진은 폭행을 한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가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들이 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엄마의 이야기.

엄마는 나쁜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며 오히려 자신이 더 억울하다고

제작진에서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아들을 폭행한 것이 아니라 보통 훈계수준이였다고 말을 하고 있다.

엄마의 말은 이제 고1이나 된 아들이 엄마가 그렇게 심하게 때리면 엄마를 힘으로

제압을 하지 않았겠냐고 말을 하고 있다.

과연 엄마와 아들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오늘 방송에서 함께 생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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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독한인생 서민갑부는 강화도에서 농어를 잡아 서민갑부가  된 윤영달,윤명희 부부의

이야기를 함께 한다.

윤영달 씨의 어린시절은 너무나 가난했다. 6형제중에 첫째로 13세인 어린나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할 수 없이 영달 씨는 배에 올라야만 했다.

흔들리는 배에서 뱃사람들의 식사를 챙기며 거친 뱃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야만

했다. 너무나 힘든 생활이 였지만 영달 씨는 자신의 동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6개월 선금으로 받은 월급도 모두 가족을 위해서 사용을 했다.

이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영달 씨는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영달 씨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계속 반복되는 생활에 점점 더 빚만 늘어가면서 영달 씨는 바다에서 도망치듯

바다를 떠났다. 하지만 영달 씨는 다시 바다로 돌아 오고 말았다.

과연 영달 씨는 무엇 때문에 다시 배를 타야 했을까?

영달 씨의 부인 명희씨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처녀였다.

도시에서 살아 명희 씨는 어촌 생활에 대한 설래임이 있었다.

위험하다고 만류를 하던 남편을 설득해서 배에 오른 명희 씨. 명희 씨를 기다린 것은

지독한 배 멀리와 뱃일을 하면서 생기는 상처 뿐이였다.

다시는 배를 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이를 물고 배를 타야 했던 그녀.

과연 왜 명희 씨는 다시 배를 타야만 했을까?

뱃사람들이 만든 강화도 선두리 어시장. 이곳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게가 있다. 그곳은 윤영달, 윤명희 부부의 두 아들이 함께 하고 있는

가게라고 한다. 두 아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평범한 회사원이 였다.

하지만 지금은 두 아들 모두 지금하고 있는 일이 자신들의 천직으로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고 한다.

과연 영달씨와 명희씨 부부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아떻게 서민갑부 대열에 들었는지 방송을 통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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