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 깊은 산골,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스미고 밤에는
반딧불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그곳에 돈키호테가 살고 있습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묶은 다큐멘터리 감독 최기순 씨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야생 호랑이를
찍은 뒤 자연이 주는 매력에 빠져 살고 있는 최기순 씨.
이곳에서 어린 자작나무를 심고 양지에 이끼를 기르며 낙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를 도와 숲을 가구는 가족들. 팔순의 나이에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아버지
최종화 씨와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 박순옥 씨, 산초 역할을 든든하게
해내고 있는 조카 이혜지 씨까지 함께 낙원을 꾸미면서 언젠가 조카에게 숲을 맡기고
다시 맹수를 찍기 위해서 시베리아로 떠날 꿈을 꾸고 있습니다.
미국인 아내 안나 스베라 씨는 한옥과 가야금을 사랑합니다. 기순 씨와 부부가 된
것은 8년 째로 지금은 주말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대가야의 악사 “우룩”에 빠져 그의
고향인 충주에 살고 있는 아내는 꿈속에서 만난 기순 씨를 운명의 짝이라 믿었습니다.
주중이면 홍천에서 숲을 가꾸며 두 집 살림을 하고 겨울이면 맹수를 찍기 위해서
시베리아로 떠나는 남편이 못마당하기만 합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인 기순 씨, 그리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에서 지내던 기순 씨의 딸 안젤라입니다. 3년 만에 부녀가
만났습니다. 전처와 헤어지고 딸과 떨어져 살았던 기순 씨. 야생 다큐멘터리에 빠져
달려온 지난날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너무나 무정한 아빠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 딸은 어느새 부쩍 자라서 아빠 곁으로 왔습니다.
시베리아 영하 40도 추위 속에서 수 개월을 버티며 맹수를 카메라에 담는 짜릿함.
나무 한 그루 직접 심으며 숲 속 낙원을 만들고 있는 낭만, 평생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왔지만 가족의 행복은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기순 씨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가족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정답 없는 인생에
어떤 후회도 남지 않도록 돈키호테 기순 씨는 지금도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