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2019/06/26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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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학사건- 수제축구화]

서울 광희동에 있는 <신창스포츠>, 이곳에서는 김봉학 씨가 수제 축구화를 만들고

있는 곳입니다. 무려 40년 동안 손으로 맞춤형 축구화를 만들고 있는 장인으로

유명합니다. 손님의 발을 그려놓은 종이 한 장이면 축구화가 만들어집니다.

김봉학 장인이 만든 축구화는 축구동호회부터 학교 축구부 선수, 발가락이 긴 사람,

발 모양이 변형된 사람까지 자신의 발에 맞는 축구화를 맞추기 위해서 매일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습니다. 김봉한 장인은 단순히 수제 축구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축구화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신창스포츠

서울 중구 퇴계로 330-1

02-2234-8060

 

 

신으면 공이 착 달라붙는다는 축구화부터 프리킥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프리킥

전용 축구화, 발목을 보호하는 발목이 긴 축구화 등 종류와 기능이 다른 축구화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직접 만든 수제 축구화뿐만 아니라 기성품 축구화까지

모두 수선을 하고 있습니다. 소재와 재료에 따라 착화감부터 기능성이 다르게 되는

수제 축구화 장인을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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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빚는 선물- 벌꿀과 죽염]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아카시아꿀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가는 5월 중

20일 정도가 됩니다. 수천마리의 벌들이 20여 일 동안 모은 꿀을 채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채밀 작업의 시간이 계속될수록 벌들이 사나워지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합니다. 채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벌들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채밀 작업이 끝나면 포장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동 양봉을 위해 재정비하는 작업

또한 중요합니다. 아카시아꿀을 얻기 위해서 전국을 다니는 동안 줄어든 벌들을 벌통에

가득 채워야 이동이 시작됩니다. 꽃의 개화시기에 맞춰 6개월 전국 팔도를 이동하는

작업자들의 모습을 함께 합니다.

 

 

벌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로열 젤리입니다. 건강 보조 식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 작업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신선도가 생명인 로열

젤리 생산은 매우 집중을 해야 합니다. 개어난 지 48시간 된 벌의 유충을 여왕벌로 만들기

위해 일벌들은 로열젤리를 배출합니다. 로열 젤리는 만들어진 지 72시간 이내로 보다

까다롭고 정교한 작업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 한 죽염 공장이 있습니다. 수정처럼 빛나는 죽염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25일 동안 계속되는 작업의 처음 시작은 바로 소금을 다지는

일입니다. 3년 된 왕대나무 속에 잘게 분쇄한 천일염을 채워 넣는데 하루에 작업한느 양만

2천개에 달합니다. 굽는 과정에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소금 기둥을 단단히 채우고 나면

작업자들의 온몸은 욱신거리기 일쑤입니다.

 

 

황토를 반죽해 대나무 입구를 막고 가마 속에서 굽어냅니다. 이것을 다시 분쇄해서

대나무에 넣고 굽는 과정을 8번 반복하는데 그 온도가 무려 800도씨 이상입니다.

죽염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인 9번째 단계에서는 가마 온도를 1700도까지 올려 고열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때가 25일 동안 노력해온 결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과정이라

더욱더 신중해야 합니다.

 

 

인산죽염

경남 함양군 병곡면 다볕길 99-25

055-964-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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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산속, 원시림 같은 숲속에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채 혈액순환을 돕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남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자연인 김만호 씨입니다. 그는 매일 산에

오르내리며 하산할 때 반드시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을하며 다리의 피로를 풀어준다고

합니다.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산 생활을 시작했다는 자연인. 과연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자연인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을 따라

그리며 만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취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간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8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 동안 간판을 하나하나 직접 그리며 하고 싶었던

그림을 원 없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점차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그가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었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위해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습니다. 자연인은 친구와 함께 건설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돈 문제로 갈등이 생기고 잦은 다툼은 그를 산사나이가

되게 재촉을 했습니다. 자연인은 가족들과 합의 하에 산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조금이나 책임지기 위해서 산골에서 할 수 있는 닭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마저도 산짐승들의 습격과 전염병으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산 생활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산이 주는 매력에 빠져 산 사나이가 돼버린 자연인은 1년 간

악착같이 생활비를 벌어 아내에게 주고 나서 산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로 숲속 연주회를 즐기고 봉선화와 백합을 심어 꽃밭을 가꾸며

낭만적인 산 생활을 하고 있는 자연인. 산에서 채취한 천문동을 넣은 김치볶음밥과

취나물로 만든 초밥, 낚시로 잡은 갈겨니로 생선구이까지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을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새롭게 청춘을 맞이해 낭만이 가득한 산골 살이를

하고 있는 자연인 김만호 씨를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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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