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2019/11/11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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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의 한 과수원, 이곳에는 몇 번의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두 다리가 성한 사람들도 닫기 힘들 정도로 큰 나무들 사이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종횡무진 하는 남편 정학재 씨와 남편의 손발이 되고자 온갖 굳은 일을

하는 아내 홍인숙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아내 인숙 씨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빼어난 외모에 공부도 잘해 주면 사람들의 시기를 받았던 수재였습니다.

남편 학재 씨는 중장비 사업을 하며 자주 다니던 식당의 맏딸이었던 인숙 씨에게 첫눈에 반해

그날부터 예비 장모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습니다. 인숙 씨는 학재 씨의 서글서글한

인품과 남자다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렇게 짧지만 뜨거운 연애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과 사업도 잘 되어가던 중 결혼 6년 만에 첫 번째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일을 해주고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사업이 점점 기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학재 씨 부모님이 운영하던 과수원이 전부였습니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던 부부는 단란했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절박한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농사일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갈 쯤, 부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남편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였습니다. 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학재 씨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아내는 두 팔 걷고 학재 씨가 했던 모든 일을

혼자 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모습을 지켜본 학재 씨는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학재 씨는 죽기

살기로 재활에 매달렸고 어떻게든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만의 맞춤 중장비를

만들어 하루에도 수백 개의 과일을 따내는 기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학재 씨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던 했습니다.

 

 

남편 학재 씨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마다지하 않는 열혈 로맨티스트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일을 모두 하던 아내는 한 번도 힘든

내색하지 않았던 인숙 씨와 그런 아내가 평생의 행운이라 여기는 학재 씨의 사랑이 오늘도

조용히 익어갑니다.

부부는 35년 간 많은 고생 끝에 3000평이였던 과수원을 8500평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연간

5000여 명의 체험객이 다녀갈 정도로 지역에서 사과 맛있기로 소문난 과수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수입도 안정적이고 과수원 체험도 성황을 맞아 조금은 느슨해질 만도 하지만

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수확에서 판매까지 모든 일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에덴농장

전북 익산시 왕궁면 제석사지로 80

063-832-4852/ 010-3677-9004

지금의 과수원이 있기까지 아내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아내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과일을 돌보는 것은 물론 직접 고소각업차에 올라 잔가지 톱질, 무거운 사과 박스를 번쩍

 들어 올리는 과수원의 해결사입니다. 체험을 진행하며 체험객들의 웃음까지 챙기는 인숙

씨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합니다.

손자 정현수 군도 맡고 있으니 인숙 씨는 힘들법도 한데 손자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피로가 싹 풀립니다.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한 현수가 딱할 때도 있지만 나중에 커서 할머니를 치료해주겠다며 의사를 하겠다고 하거나 과수원을 물려받겠다는 현수의 사랑 섞인

말을 들을 때면 흥이 절로 납니다.

힘들게 일군 과수원을 아들에게 물려줄 꿈에 부풀었던 부부, 하지만 평생 고생하며 사는

부모님을 보며 성장한 아들 정득환 씨는 조금은 여유롭게 사는 삶을 원했습니다. 보고 배운

것이 농사인 아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일을 돕기 시작했지만 그런 아들이 학재 씨의

눈에는 항상 어슬렁거리며 일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혼 후 손주까지

아버지 집에 맡기데 된 후 학재 씨와 아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학재 씨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다른 일을 찾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들 또한 아버지를

 견딜 수 없다며 과수원을 떠나고 인근 시내로 나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과수원을 나간 지 1, 인숙 씨는 이런 부자지간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부자의

 소식을 서로에게 전하며 마음 길을 다져보지만 자존심이 센 것만큼은 똑 닮은 부자는

누구 하나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학재 씨는 아들에게 돌아오라고 하고 싶지만

 여전히 그 말이 입가에 맴돌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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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