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네집 :: '2018/12 글 목록 (3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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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한순자 손칼국수집>은 칼국수 전문점으로 수제 칼국수로 유명한 곳입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너무나 생각나는 칼국수집으로 이곳은 손으로 직접 밀어낸

칼국수의 쫄깃쫄깃함과 시원한 멸치 육수에 다진 양념과 유부가 듬뿍 들어간 구수하고

얼큰한 칼국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북어머리와 멸치, 청양고추, 고추씨 등으로

우려낸 육수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육수 맛을 내기 위해서 10개가 넘는

육수통에서 육수를 끓여 내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곳에서 육수를 끓이게

되면 국물 맛이 변하다고 해서 육수의 맛이 변하지 않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얼가왕]

 

5000원 유부 손칼국수+보리밥+ 냉면- 한순자 손칼국수집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439-1

02-777-9188/ 영업시간 24시간

칼국수+ 보리밥+냉면-5000

당일 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5000원 육개장- 장모님 육개장

서울 강서구 양천로 551-17 1104

070-7126-6912/ 영업시간: 9~22

파김치 육개장- 6000

 

 

단돈 5천원이라는 가격에 유부 칼국수와 함께 보리밥에 냉면까지 함께 먹을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합니다. 55년 전통이 있는 이곳은 회현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하기 편안한 곳에 있습니다.

등촌동에 있는 <장모님육개장>에서는 5천원에 육개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파김치

육개장은 6천원입니다. 예전에 이곳은 국밥 집이였는데 육개장 집으로 변경이 된

곳입니다. 보통 육개장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는 8천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육개장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허접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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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 있는 <발보다국시>에서는 여름철에 계절 메뉴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콩국수를 한 겨울에도 먹기 위해서 찾는 손님들로 줄을 서고 있는

곳입니다. 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면 자동적으로 감탄사가 나온다는 이곳에

모든 것을 알아 봅니다. 눈내리를 추운 겨울 당연히 따뜻한 국밀이 생각나지만

이곳에서 콩국수를 받아 들면 그 자태를 보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고

합니다.

[국수의 신]

밥보다국시- 콩국수, 어죽칼국수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서해로336

031-681-1118/ 영업시간: 1030~20

국수꽃이 피었습니다- 콜라겐부뷤국수

대구 중구 동성로 230-9

053-421-7300/ 영업시간: 11~22/ 일요일 휴무

 

 

회색 빛의 콩국물에 초록색 면발과 그 위에 빨간 토마토와 노란 삶은 달걀

반쪽 그리고 검은 깨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예뻐서 감탄할 정도입니다.

이곳 사장님인 윤향숙 씨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afn의 온도를 고려해 콩을

불리고 시간을 다르게 하고 국수를 담아내는 뚝배기도 데워서 사용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면발을 뽑는 작업실에는 형형색색의 면발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국수의 색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예술작품 뺨치는 콩국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구에 있는 <국수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화려한 비주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국수가 있습니다. 국수풀코스로 어떤 국수를 시켜도 소떡소떡이 애피타이저로

제공이 되고 홍초 에이드가 디저트입니다. 국수의 종류는 족발, 제육, 불고기 등

얹어지는를 선택하면 끝입니다. 국수가 돔 뚜껑에 덮에 손님상에 오르고 난 뒤

 

 

돔 뚜껑을 열면 참나무 향이 식감을 자극하고 색색의 채소와 고명으로 장식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국수는 과학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모든 재료를 개량해

사용을 하고 실시간으로 염도를 검사합니다. 정확한 온도와 시간 안에 면을 삶아

내는 기계까지 구입했을 정도로 국수에 모든 것을 바친 주인공을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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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행- 통영 바다가 맛있는 이유] 1,

이 바다에 사는 법, 소매물도

소매물도는 우리나라 남동부 최남단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15가구가 살고 있는

아주 작음 섬입니다. 이 섬의 가장 자랑거리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풍경과

하루에 두 번 열리는 열목개라고 불리는 자갈해변을 거쳐 등대섬으로 가는 길입니다.

강제윤 시인은 섬에서 태어나 십여 년 덤게 섬을 찾니고 있습니다.

해녀 정복선 씨는 50년 가까이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부둣가에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온 해녀들에게 물질을 배워 다섯 딸을

키워낸 것입니다.

 

 

소매물도에는 마지막 남은 해녀 3총사가 있습니다. 해녀 정복선, 김막례, 이점선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3총사에게는 소매물도 바다는 냉장고나 다름없습니다.

전복에 소라, 문어, 굴 등 해산물이 풍성한 소매물도의 바다를 함께 만나봅니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정복선 씨를 기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 김재권

씨입니다. 아내가 무사히 돌아왔나 싶더니 아내의 고무 모자가 무사하지 않습니다.

 

 

통영 사람들이 부석이라고 부르는 아궁이 앞에서 고무 모자의 구명을 때우는 남편.

남편의 살가운 말은 아니지만 그 한 마디에 담긴 남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아내는

오늘도 바다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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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돌려주세요, 그 후]

몇 년 전부터 집을 나가 살던 딸이 어느 날, 가족을 찾아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한다는

엄마의 제보자 있습니다. 제보를 한 엄마는 지난 2017년에 내 달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던 주인공입니다. 당시 방송에서는 한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가 돌

아오지 않는 딸을 애타게 찾아 나섰던 부모의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방송 이후에 딸을 찾았지만 딸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고 올 6월경부터 한밤 중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차에 페인트를 칠하고 고함과 폭언,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

오빠의 직장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작진이 직접 만난 자녀들은 가족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인정해 주지 않고 강제로 종교를

바꾸려고 해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딸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지금까지 시위에 나섰던 부모님이지만 지금까지 딸들은 돌아오지 않고 가족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은 패륜적인 딸들의 공격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제작진이 만난 딸들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을 하거나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욕해서 저지른 우발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이 자신들의 종교를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남치 감금을 일삼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부모에 대한 억울한 마음이 일어 가족을 공격적으로

대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딸들의 공격은 혼자 자행할 수 잇을 정도의 일이 아나며 누군가의 지시나

사주가 있었을 것이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젊은 나이에 현실적인 삶을 외면하고 있는 딸들이 걱정스러운 부모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부모에게 무차별 공격을 하가는 딸들. 과연 이 가정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딸들의 행동을 여러 방면으로 분석해 보고 가정이 다시 예전의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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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소녀- 중국 농구공 소녀]

200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수영선구권대회에서 특별한 선수가 출전을

했습니다. 그 선수는 두 다리가 없어 농구공 소녀라고 불리는 <첸 홍얀>이라는 여성

입니다. 첸 홍얀이 농구공 소녀로 불리게 된 이유는 농구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발 대신 농구공을 발 삼아 걸어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첸 홍엔의 할아버지가

만들어줬다는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국의 시골마은 윈난성 루량현에서 자랐습니다. 2000년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어른들을 돕기 위해 밭에 가던 네 살 꼬마 첸 홍엔은 화물차에 교통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사고로 첸 홍엔은 골반 밑으로 양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고 난 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애에도 가정평편이 너무나 가난해 휠체어 타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몸을 바닥에 끌고 다니면서 자주 다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가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렇게 첸 홍엔은 양 팔과 농구공발로 걷게된 것입니다.

그 뒤로 그녀는 농구공소녀가 되었습니다.

 

 

첸 홍엔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농구공 대신

의족을 달았고 중국 장애인 국가대표팀 감독에 눈에 띄어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리가 없는 그녀에게는 수영은 힘든 운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지하지 않고

수영에 매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윈난성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목어 걸었습니다.

다음 해 200918세 이하 전국 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 은메달 2개를 목어

걸며 그녀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0년 전국 장애인 수영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3개를 따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 할 수 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출전한

올림칙 예선 직전 그녀에게 농구공발을 만들어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그 뒤로 언론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가 살았습니다.

 

 

첸 홍엔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수영 연습일 시작했습니다. 2016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해 여자 평영 100m에서 4위를 차지 했습니다. 첸 홍얀은 수영은 나

 자신과의 싸움, 포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죽을

힘을 다해 노력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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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숙이네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