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철학자들- 한 조각 자연이어라]
한 평생 지리산 다랑논을 일구고 살고 있는 농부 김봉귀 할아버지와 임옥남 할머니는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히 둑을 쌓고 물을 가둬 만든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조금씩 돈을 모아 한 다랑이씩 사서 늘려왔다는 노부부의 다랑논은 모두 아홉 다랑이입니다. 자식 여섯을 굶이지 않고 키워내며 노부부의 정성으로 가꿔온 다랑논은 깊은 주름 사이로 다른 생명도 키웠습니다.
경사 20도 산비탈의 다랑논은 사람이 만든 작은 습지입니다. 개구리가 낳은 알에 소금쟁이 떼가 모여들고 올챙이는 지렁이 체액을 빨아먹고 올챙이를 잠자리 유충이 공격합니다.
벼가 자라면 고라니, 멧돼지들이 내려와 뜯어먹기도 하고 그렇게 논을 망쳐도 할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농사는 자연가 나눠먹는 거라 생각하면 화낼 일이 없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합니다.
김봉귀 할아버지는 7살 때부터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했습니다. 80년 넘게 농사를 하며 한 해 한 해 자연이 내주는 것이 다르고 커다는 모습도 제각각으로 매번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농사라고 합니다.
올해는 시작부터 시련이 많았습니다. 날이 가물어 물이 부족해서 위쪽에 있는 다랑논에 모를 심지 못한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논을 묵혀둔 것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태풍으로 다 키운 고춧대가 쓰러져버리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다랑논의 수확이 여전만 못합니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직접 지은 건강한 밥을 먹을 수 있어 만족합니다. 김봉귀 할아버지는 수확이 끝난 논에 남겨진 이삭은 줍지 않습니다.
다랑논 위쪽 산속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겨울 식량이 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힘든 농사일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가을 벌써 다랑논에서 내년 농사할 시기를 기다립니다.